입력
수정
법정관리·폐업신고 등 건설업계 구조조정 확산 건설투자 4분기 연속 하락, 올해 마이너스 성장 건설경기 침체가 성장률 0.4%포인트 끌어내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수주 실적이 있는 10대 건설사 중 ‘1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린 곳은 7곳에 불과하고 시공능력 상위사 중에서도 신규 수주 실적이 전무한 사례가 적지 않다. 지역 간 격차도 여전해 수도권과 일부 지역을 제외한 지방 건설수주는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부도·폐업·법정관리 신청 등 업계 구조조정도 본격화되고 있다.
상반기 건설 수주 1조원 미만 1곳, 0원 2곳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수주 실적이 있는 10대 건설사 중 '1조원 클럽'을 달성한 곳은 현재까지 7곳으로 집계됐다. 건설사별 수주액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5조213억원 △포스코이앤씨 3조4,328억원 △현대건설 2조9,420억원 △DL이앤씨 2조6,830억원 △롯데건설 2조5,354억원 △GS건설 2조1,949억원 △HDC현대산업개발 1조3,018억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DL이앤씨는 지난달 31일 한남5구역(1조7,584억원), HDC현대산업개발은 26일 부산 연산10구역(4,453억원)을 따내며 막판에 1조 클럽에 합류했다.
반면 시공 능력 평가 3위인 대우건설은 지난달 군포1구역(2,981억원)을 수주하며 올해 들어 첫 실적을 기록했지만, 1조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SK에코플랜트는 아직 아파트 재개발·재건축 수주 실적이 없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서울세종고속도로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여파로 신규 수주를 중단한 상태로 상반기에는 신규 수주 없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SK에코플랜트는 이달 중순 예정된 면목7구역 재개발 시공사 선정 결과에 따라 상반기 마수걸이 수주를 할 가능성이 남았다.
지역별 격차도 두드러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건설수주액은 전년 대비 30.9% 증가한 114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21.3% 감소하며 부진했으나 토목(30조5,000억원)과 건축(84조원) 수주가 모두 30% 이상 늘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반면 지방 건설수주액은 81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6% 감소했다. 2023년(-15.2%)에 이어 2년 연속 내림세다. 지방 토목 수주액은 21.0% 줄며 최근 8년 사이 최저치인 19조8,000억원으로 하락했다. 건축 수주 또한 0.3% 감소한 53조원에 머물렀다.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충청, 강원 등이 증가세를 보였다. 서울은 토목(140.9%)과 건축(47.1%) 두 부문에서 전년 대비 양호한 수치를 나타내며 전국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56.6%)을 나타냈고, 이어 인천(47.6%) 충남(43.8%) 강원(41.5%) 세종(26.0%) 충북(24.5%)의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구, 경남, 전남, 경북은 2년 연속 하락했다. 특히 지난해 대구 건설수주액은 2조5,000억원으로 11년 이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어 경남(6조8,000억원, -6.7%) 전남(6조5,000억원, -17.0%) 경북(6조5,000억원, -32.3%)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해 1분기에만 건설사 6곳 법정관리 신청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부도와 폐업으로 내몰리는 건설사가 속출하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사 부도 건수는 29건으로 201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1분기에만 6곳의 건설사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1월에는 신동아건설(시공능력 58위)과 대저건설(103위), 2월에는 삼부토건(71위), 안강건설(138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3월에 벽산엔지니어링(180위)이 잇따라 파산했다.
더욱이 침체의 흐름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부도를 낸 건설사 29곳 중 25곳(86.2%)이 비수도권 건설사였다. 그러나 올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대저건설과 안강건설, 대우조선해양건설을 제외하고 신동아건설, 삼부토건, 벽산엔지니어링도 모두 서울에 본사를 둔 중견 건설사로 전체 파산업체(6곳) 중 절반(3곳)이 수도권에 위치했다. 수도권 시장도 더는 중소형 건설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방증인 셈이다.
폐업신고도 빠르게 늘고 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2월 폐업신고 한 종합건설사는 103곳으로 하루에 1.8개꼴로 문을 닫았다. 2023년과 2024년 같은 기간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각각 70곳, 79곳으로 올 들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종합건설사보다 작은 규모로 도장·방수 등 특정 업무만 수행하는 전문건설사까지 포함하면 올해 1~2월 폐업을 신고한 업체는 613곳으로 파악됐다. 건설산업의 위기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고금리·원가 부담·과잉공급에 침체 장기화
오랜 건설경기 부진은 이제 단순히 산업 차원의 위기를 넘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린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5월 2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성장률을 기존 1.5%에서 0.8%로 0.7%포인트나 낮추게 된 배경으로 건설 부문 침체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은은 건설경기 침체가 올해 성장률을 0.4%포인트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했다. 나머지 하방 요인은 수출(-0.2%p), 민간소비(-0.15%p) 순이었다.
건설투자는 국내 GDP의 약 14%를 차지하는 주요 부문으로 올해는 6.1%의 역성장이 예상된다. 예상이 현실화하면 역대 세 번째 낮은 성장률이다. 한은의 역대 통계치를 살펴보면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건설투자가 -13.2%로 1956년 -6.7%를 2배 이상 넘어서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건설투자의 분기별 성장률(직전 분기 대비)도 지난해 2분기(-1.7%)부터 3분기(-3.6%), 4분기(-4.5%)를 거쳐 올해 1분기(-3.2%)까지 4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건설투자 부진의 원인으로는 고금리 장기화, 원자재·인건비 상승 등 원가 부담에 더해 과거 저금리 시기 과잉 공급과 지방 부동산 침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은 경기적 요인 외에도 건설비 상승률이 소비자물가를 웃도는 상황에서 정치·금융 불확실성까지 더해 건설사들이 분양과 투자를 미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역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리 상승과 미분양 증가, 중소 건설사 파산 등으로 악순환이 시작됐다"며 "고령화와 주택 수급 불균형 같은 구조적 제약도 주택 건설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