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로 읽는 한국경제사 – 11.순양카드 부도위기, 현금서비스 중단
재벌집 막내아들, 신용 대란에 부도위기 몰린 순양카드, LG카드 사례와 유사 드라마와 달리 LG카드는 채권단이 3조원 투입해 3년 만에 겨우 정상화 신용 대란으로 이익 본 것은 진동기 부회장이 아니라 진도준 본인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 상에서 둘째아들 진동기 부회장이 운영하던 순양카드가 부도위기에 빠지며 현금서비스를 중단하는 장면이 나온다.
첫째아들인 진영기가 “겨우 4천억도 못 막아서 부도내냐?”는 비아냥을 섞어 동생을 힐난하고, 결국 부도위기를 막지 못해 주인공인 진도준에게 순양카드를 넘기게 된다. 그 전에 순양카드를 열심히 키우다 첫째와 둘째 아들이 열심히 경쟁하게 해 비싼 가격에 순양카드를 넘겼던 진도준의 복수가 실현되는 모습 중 하나로, 진도준에게 빙의한 시청자들에게 복수의 쾌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그럼 실제 한국 경제사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을까? 있었다. LG카드 매각건이다.
순양카드 부도 위기, LG카드 인수한 신한카드 사례와 유사
지난 1979년 1월 설립, 1988년에 당시 금성사, 현 LG그룹에 인수된 LG카드는 삼성카드와 더불어 양대 대기업의 경쟁마 중 하나였다. 일화에 따르면, 거의 모든 사업에서 삼성그룹에 밀리고 있던 LG그룹에서 유일하게 삼성카드를 앞지르고 있던 LG카드 임원단들이 그룹 전체 회의에서 크게 칭찬을 받고, 반대로 삼성카드 임원단들은 ‘카드만 안 된다’는 혹평을 들었어야 했다고 알려져 있다.
LG카드가 승승장구 했던 가장 큰 이유는 2000년대 초반 IMF 극복을 위한 김대중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과, 이른바 ‘신용대란’으로 불렸던 카드 남발 사태 때문이다. 카드 신청을 넣을 경우, 일반적으로 꼼꼼하게 직장 상황을 비롯한 신용 등급을 확인해야 하나, 당시 금융 시장에서 신용 등급에 대한 개념도 불확실하기도 했고,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 탓에 너도나도 카드를 발급받는 상황이 이어졌다. 당시 이른바 ‘카드 돌려막기’를 통해 여러 카드들에서 ‘카드 대출’을 통해 수입 없이 수십개의 카드에서 만들어낸 신용만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도 많았다.
2002년 들어서는 국내 최초로 천만 가입자를 확보하며 외적 성장을 이뤘으나, 결국 2002년 중반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개인파산으로 카드 대란이 발생, 2003년에는 부도 위기에 몰렸다. 2004년 1월에는 LG그룹이 보유한 LG카드, LG투자증권 지분 전체를 모두 채권단에 넘기면서 금융업에서 손을 떼고, 한국산업은행이 경영권을 갖고 있다가 2006년 12월에 신한금융지주에 매각된다.
신용 팽창기에 부풀린 카드사, 매각 직후 개인 파산으로 부도 몰려
드라마 상에서 진도준이 금융위기 극복 중이던 신용 팽창 기간 동안 LG카드의 2000년대 초반처럼 마구잡이식으로 카드를 발행해 가치를 부풀린 다음에 순양카드를 매각한 점, 2002년 말 카드 대란이 발생하자 LG카드가 현금서비스를 중단한 것과 유사하게 부도위기에 몰린 상황에 순양카드도 현금서비스를 중단한 점 등이 유사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LG카드의 부도도 초창기에는 4천억원 남짓의 부도를 막지못했기 때문이었는데, 순양카드 부도에서도 첫째아들은 진영기가 둘째아들인 진동기를 무시하는 발언에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차이점이 있다면 순양카드는 결국 순양그룹에서 부도를 막아주지만, LG카드는 2003년 11월에 채권은행들이 2조 유동성 지원, 2004년에 1월에 1조5,916억원 유동성 지원, 이어 3월에 다시 산업은행이 1,250억원을 지원하는 등, 채권단이 부도를 막고자 여러차례 자금 지원을 이어갔다. 2003년 12월에 LG카드 매각이 불발되고, 하나금융, SC제일은행, 사모펀드 MBK, 농협 등이 인수를 타진하다가 2006년 12월에야 신한금융지주가 7조2천억원에 인수를 마무리짓는다.
또 하나 차이점을 짚자면, 드라마 상에서는 진도준이 신용 거품을 활용해 순양카드의 기업 가치를 최대한 키운 다음 매각해 큰 차익을 남기지만, 실제 LG카드 매각은 부도로 채권단에 3조원 이상의 자본을 투입하고 나서도 다시 3년의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드라마 상에서는 진동기 부회장이 신용 거품을 일으킨 죄인처럼 그려지고 신용대란으로 피해를 본 윤현우가 피해자처럼 나오지만, 실제로 신용 거품을 틈타 이익을 차린 것은 진도준이었고, 당시 신용 거품 덕분에 카드 돌려막기로라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윤현우에게 느슨한 카드 규제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