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 글로벌 인기, 박수 대신 쓴소리를!

역사 왜곡 논란 ‘철인왕후’, 넷플 글로벌 흥행 K-사극, ‘한국 전통 문화’로 서구권 공략에 탁월 콘텐츠의 문화적 영향력 생각할 때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가 K-콘텐츠 사랑에 푹 빠졌다. 오리지널 제작은 물론 과거 방영된 한국 드라마 판권을 구입해 재미를 보면서다. 단순히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를 매료하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도 괜찮은 것일까?

tvN 드라마 <철인왕후>가 대형 OTT 넷플릭스로 무대를 옮겼다. 2020년 방영된 해당 드라마는 그동안 티빙과 시리즈온을 통해 국내에서만 시청할 수 있었지만, 이달 15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며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드라마는 넷플릭스가 발표한 2월 셋째 주 글로벌 TV쇼 비영어 드라마 5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흥행 중이다.

한국 넷플릭스 차트 최상단에 오르는 사극 드라마가 글로벌 차트로 직행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철인왕후>보다 비교적 최근작인 tvN <슈룹>과 <환혼> 시리즈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 속 한국의 전통 의상과 풍경, 고유의 문화가 전 세계 시청자를 매료하면서다.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던 외국인들은 사극을 통해 우리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퓨전 사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작품 대부분이 옛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로 사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역사에 대한 이해와 실존 인물들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철인왕후>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역사 왜곡 논란을 낳은 작품으로 꼽힌다.

불의의 사고로 대한민국 대표 허세남 영혼이 깃들어 ‘저세상 텐션’을 갖게 된 중전 김소용(신혜선 분)과 두 얼굴의 임금 철종(김정현 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드라마는 조선의 궁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에도 중국 소설 「태자비승직기」를 원작으로 했다. 작품 활동 전반에 ‘혐한’ 정서가 녹아있는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소식에 많은 시청자가 공분했지만, <철인왕후>는 2020년 12월 예정대로 전파를 탔다.

드라마는 방송 2회 만에 거센 비판을 마주했다. 주인공 소용이 조선왕조실록을 가리켜 ‘지라시'(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리기 위한 종이쪽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라고 표현하거나 실존 인물인 신정왕후를 미신에 빠진 인물로 묘사하면서다. 제작진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서둘러 수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그 뒤로도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드라마는 신정왕후에 이어 순원왕후를 희화화했고,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우리 유산 종묘제례악에 대해 “언제까지 종묘제례악을 추게 할 거야”라는 우스꽝스러운 발언으로 빈축을 샀다.

시청자들은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지만 최소한의 근본도 없다”, “신개념 매국이냐”, “재밌는 게 아니라 우스운 드라마”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드라마는 쏟아지는 비난에도 뜨거운 화제성으로 연일 10% 넘는 TV 시청률을 기록, 총 20회의 긴 이야기를 완주했다.

사진=SBS

종영과 함께 가라앉은 논란에 다시 불을 지핀 사건은 <철인왕후>를 집필한 박계옥 작가가 또 다시 역사 드라마 <조선구마사>를 선보이면서다. 네티즌들은 박 작가가 중국 콘텐츠 제작사 항저우쟈핑픽처스 유한공사와 계약을 맺은 후 <조선구마사>를 집필하는 것을 두고 “이미 역사 왜곡 전력이 있는 작가가 중국 자본까지 챙기는데 역사 왜곡 반복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네티즌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조선구마사>는 첫 방송에서 실존 인물 조선 태종과 충녕대군(세종) 등을 왜곡해 묘사하는 것을 비롯해 중국풍 음식을 등장시켜 동북공정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시청자들은 제작 지원 및 광고 협찬을 하는 기업의 불매를 선언하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결국 방송사는 불과 2회 만에 작품을 폐지하고 사과했다.

박 작가와 제작진은 물론 감우성, 장동윤 등 <조선구마사>에 출연한 배우들도 고개를 숙였다. 일각에서는 창작자를 향해야 할 비판이 배우들로 번지는 것에 대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인 만큼 배우들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작가의 전작 <철인왕후>에 출연한 신혜선과 김정현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특히 신혜선은 모델로 발탁된 한 생활용품 브랜드와 계약 해지가 논의되기도 했다.

당시 <철인왕후>의 VOD(다시 보기) 서비스를 제공하던 OTT 티빙과 네이버 TV는 역사 왜곡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지자 해당 드라마를 콘텐츠 라인업에서 삭제하며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씩 멀어지자 불과 9개월 만에 슬그머니 서비스를 재개했다.

시청자들의 높아진 역사의식에 눈치를 보며 사극 및 시대극 편성을 미루던 방송사들은 <철인왕후>가 문제 없이 VOD 서비스를 재개하자 일제히 묵혀두었던 작품들을 쏟아냈고, 중국 자본의 유입을 애써 꽁꽁 숨기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JTBC <설강화>는 주인공의 애절한 로맨스에 아픈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이용했다. 안기부 미화, 근현대사 왜곡 등 꾸준한 비판에도 16부작의 이야기를 완주한 <설강화>는 3%의 TV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며 모두의 외면 속에 종영했다.

사진=tvN

이 외에도 배우 김혜수와 김해숙의 만남으로 눈길을 끈 tvN <슈룹> 역시 방영 내내 역사 왜곡과 고증 오류 등 지적이 이어졌다. 작품의 극본을 맡은 박바라 작가는 쏟아지는 비판의 목소리에 “엄격한 잣대에 상상력이 위축될 수 있다”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을 실망시켰다. 같은 방송사 <환혼>은 판타지 사극인 덕에 역사 왜곡 논란은 피했지만 의상과 소품, 음식 등 드라마에 가득 찬 중국풍으로 비판의 대상이 됐으며, 이달 시작한 <청춘월담> 역시 혐한 정서를 숨기지 않던 중국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초반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독창성과 탄탄한 서사를 무기로 전 세계인을 공략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프라임비디오, 디즈니+ 등 글로벌 OTT들은 국내 방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 드라마의 해외 판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 특히 사극은 동양의 신비로움에 매료된 서구권 시청자들을 공략하는 데 일등공신이다. 넷플릭스가 현재 방영 중인 최신 드라마들을 제치고 과거작인 <철인왕후>의 판권을 구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해당 작품이 공개와 동시에 글로벌 차트로 직행한 것을 떠올리면 이런 판단은 꽤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콘텐츠의 문화적 영향력이다. 문화는 지식과 달라서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흡수’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각종 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있는 창작자들의 더 깊은 고민, ‘돈’에 포커스를 둔 플랫폼의 추구 가치가 ‘사회적 의무’로의 이동, 콘텐츠의 최종 소비자인 시청자들의 높은 의식과 거침없는 쓴소리가 더더욱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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