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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위축·임금인상 이중고 호소
특수 고용 노동자 형평성 문제 부상
자영업 생태계 붕괴 우려 점증

2025년 최저임금 심의가 본격화하면서 소상공인들이 동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무려 38년간 이어져 온 최저임금 인상을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며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는 등 전방위적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도급제나 업종별 차등적용 안 등 대안 논의는 매년 반복되지만, 노동계의 반대로 올해도 무산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폐업 속출, 자영업자 월 실수령 155만원 불과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26일 서울 여의도 소공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동결을 기치로 내걸고 업종별 차등적용, 주휴수당 폐지 등을 강력하게 주장하겠다”고 밝혔다. 송치영 소공연 회장은 이날 “소상공인들이 IMF나 코로나19 때보다 더 심한 경기 불황으로 역대급 위기에 처해 있다”며 “설상가상 미국발 통상 전쟁으로 올해는 GDP 성장률 1%도 힘든 암울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8년 동안 단 한해도 빠지지 않고 오르기만 한 최저임금을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소상공인들의 절박함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숙박 및 음식점업 생산지수 추이에 의하면 숙박·음식점업 생산지수는 2023년 2월 이후 22개월째 감소세를 거듭 중이다. 올해 1분기 소상공인 평균 매출 역시 직전 분기와 비교해 13%가량 하락했다. 숙박·여행서비스업이 전년 동기 대비 11.8%로 가장 큰 하락 폭을 그렸고, 술집은 11.1%, 분식 7.7% 주저 앉았다.
소공연이 최저 임금 인상 반대의 근거로 제시한 국세청 자료 분석 결과에서도 2023년 전국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자영업자 772만 명의 연소득 평균값은 1,859만원에 그쳤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155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주는 입장이 오히려 임금 이하의 소득으로 버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영업자들이 더는 감내할 여력이 없다고 토로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정책 결정권자들은 조정 여력에 대해 모호한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정치권은 대선 이후 결정될 정부 기조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피로도는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소공연은 이날 기자회견 말미 “역대급 위기를 겪는 소상공인들에게 이번만큼은 최저임금 동결로 적정 임금 유지를 통해 최소한의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적용 예외 조항·사각지대 존재도 문제로 떠올라
그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의는 주로 ‘얼마나 올릴 것인가’에 집중돼 왔지만, 최근에는 그 테이블에조차 앉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은 형식상 자영업자로 분류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배달, 대리운전, 학습지 교사 등 각종 플랫폼 기반 직종은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어 ‘그림자 노동자’로도 불린다.
민주노총이 26일 노동청에 이들 노동자의 임금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형평성 문제도 다시 부상하는 모습이다. 이날 민주노총은 대교에서 학습지 교사로 30년 넘게 활동한 권 모씨의 사례를 들었다. 권씨가 한 달에 174시간을 일하고 받는 임금은 평균 200만원이다. 여기에 주유비 15만원, 식비 20만원, 교육 행사 및 물품 비용 5만원 등 업무 비용 40만원을 제한 금액을 월 노동시간으로 나누면, 권씨의 시급은 9,206원에 불과하다. 여기서 권씨가 혼자 부담하는 4대 보험료까지 빼면 시급은 8,602원까지 떨어진다.
민주노총은 “사실상 고용된 형태로 일하면서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가 이들을 최저임금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다”며 “사용자는 책임 회피가 가능하고, 정부는 중재 의무가 모호한 현 시스템은 이중 삼중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고정비는 최저임금 기준 산정 시 반드시 고려하고, 차량 유지비와 통신비, 보험료 등 가시화된 비용을 실질적 사용자가 부담하거나 법적으로 지원하도록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의는 최저 임금 제도 밖 노동자의 증가로 점점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플랫폼 노동은 새로운 고용 형태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제도적 정비는 여전히 과거의 ‘정규직 중심’ 틀에 머물러 있어서다. 정부가 노동 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일부 점검에 착수한 바 있지만, 이해관계자 간 충돌이 첨예한 탓에 법 개정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그러는 사이에도 당장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혜택은커녕 ‘적용 제외’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릴 게 아니라면, 최소한 적용은 확대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논의 되풀이, 도급제·업종별 구분안 올해도 불발?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27일과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각각 2·3차 전원회의를 개최한다. 앞서 최임위는 지난달 22일 1차 전원회의 이후 한 달여간 전문위원회 심사, 현장 의견 청취를 진행한 바 있다. 2차 회의에서 최임위는 생계비전문위원회와 임금수준전문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보고받고, 3차 회의부터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최저임금 논의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단골 주제가 있다. 바로 업종별 차등적용과 도급제의 정착이다. 물가와 산업 구조, 사업 규모에 따라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정도가 큰 만큼 일괄적 인상보다는 차등적용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매년 반복된 탓이다. 특히 도소매, 숙박·음식점업 등 인건비 비중이 절대적인 업종은 법이 제시하는 최저임금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종별 기준 마련을 강하게 요구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번번이 노동계의 격렬한 반발에 가로막혔다. 노동계는 “차등적용은 곧 노동 차별”이라며 원칙적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도급제 도입에 대해서는 사용자 책임 회피와 임금 깎기 꼼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도급계약이 실제로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를 가장한 ‘위장도급’으로 악용되면, 제도의 실효성 또한 저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최임위는 매년 이 같은 논의를 공식 안건으로 다루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해마다 최저임금은 ‘모든 업종 동일 인상’으로 결정돼 왔고, 그 사이 자영업자들과 취약 업종은 생존의 고통을 떠안았다. 올해 역시 노동계의 반발, 기준 미비, 정치권의 부담 회피가 맞물리면 같은 시나리오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복되는 논의 속 실효성 없는 결론이 정책의 피로도를 높이고, 종국에는 사회적 신뢰마저도 떨어뜨리고 있다는 회의론적 시각이 짙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