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웨이브 합병 논의 본격화, 적자 딛고 ‘反 넷플릭스’ 연합군 탄생할까

티빙-웨이브 합병 본격화, CJ ENM의 태도 전환으로 논의 ‘급물살’ 합병설 등장부터 시작된 잡음, 기업가치 산정·주주 구성 변화 등 해결할 과제 산더미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MAU 900만 명 확보, ‘넷플릭스 대항마’ 나오나


SK스퀘어와 CJ ENM이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웨이브와 티빙의 본격적인 합병 작업에 착수한다. 경쟁력을 갖춰 ‘만년 적자’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국내 OTT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SK 최고위 경영진은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을 위해 협의 중”이라고 4일 밝혔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 박성하 SK스퀘어 대표, 구창근 CJ ENM 대표 등이 주축이 돼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사는 이달 내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우선적으로 콘텐츠 제휴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이다.

‘OTT 공룡’ 넷플릭스 잡아라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설은 지난 2020년 7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영상 대표(당시 SKT MNO 사업부장)가 티빙과의 합병 의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다. 당시 합작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었던 티빙 측은 합병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수익성이 악화한 CJ ENM이 입장을 바꿔 협상 테이블에 서면서 두 기업의 합병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웨이브와 티빙이 합병을 결정한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토종 OTT 플랫폼의 침체가 지목된다. 각각의 플랫폼에 콘텐츠가 흩어져 있는 현재 시장 구조에서는 ‘공룡 OTT’ 넷플릭스에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 티빙과 웨이브는 각각 1,191억원, 1,216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넷플릭스는 탄탄한 자본력과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판 삼아 국내 미디어 시장의 ‘절대강자’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국내 5월 활성 이용자 수(MAU)는 1,153만 명에 달한다. 이어 티빙(514만 명), 쿠팡플레이(431만 명), 웨이브(391만 명) 등 국내 플랫폼이 뒤를 이었다.

웨이브와 티빙이 합병에 성공할 경우 900만 명 이상의 MAU를 확보할 수 있다. 넷플릭스와 대등한 수준의 이용자 풀에서 콘텐츠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셈이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국내 콘텐츠 시장의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OTT 통합’을 주장한 바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OTT 통합 플랫폼’ 구상을 통한 K-콘텐츠의 해외 진출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업가치 산정 등 ‘잡음’ 해결해야

시장에서는 웨이브-티빙 합병이 사실상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가장 큰 이유는 ‘합병 비율’이다. 지난해 6월 티빙과 KT 시즌(seezn)의 합병 발표 당시에도 두 기업의 합병 비율과 관련한 잡음이 발생한 바 있다. IB 업계의 일반적인 기업가치 산정 방식인 주가수익배수(P/E), 영업현금흐름배수(EV/EBITDA) 등이 통용되기 어려운 적자 기업의 합병인 데다, 가입자 평균 수익성(ARPU)에 기반한 기업가치 평가 비교군 역시 해외 시장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논란을 딛고 KT 시즌은 약 2,500억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티빙에 흡수합병됐다.

IB 업계 관계자들은 단순 수치상으로 비교할 경우 웨이브가 KT 시즌 대비 약 3배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웨이브가 해외에서 잠재 수요가 큰 지상파 3사의 방송 콘텐츠를 보유 중인 만큼 한층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명확한 가치 산정이 어려운 상황에 수많은 ‘의견’만 오가고 있는 셈이다.

티빙 역시 기업가치 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JC파트너스와 파라마운트 글로벌로부터 약 2,5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던 지난해 2월, 당시 티빙의 기업가치는 약 2조원으로 평가됐다. 이후 티빙은 지난해 12월 KT 시즌과 신주 발행 및 지분 교환으로 합병을 진행했다. 기업가치를 명확히 산정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티빙이 산하 스튜디오 등을 통해 보유한 80여 개의 미방영 IP 가치를 고려하면 최대 2조3,000억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두 기업의 합병은 기정사실화됐지만, 합병 비율은 물론 공중파 3사를 포함한 주주 구성 변화 등 두 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웨이브-티빙 합병 성공의 관건은 사실상 차후 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갈등 해결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즌 합병 대비 큰 시너지, ‘적자의 늪’ 탈출할까

업계에서는 이번 합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티빙-시즌 합병 대비 유의미한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 본다. 지난해 12월 티빙과 KT 시즌 합병법인이 출범한 이후 티빙은 국내 OTT 시장 점유율 18.05%(2022년 1~9월 평균 월간 활성 이용자 수 기준)를 확보, 웨이브(14.37%)를 제치고 국내 OTT 1위로 올라선 바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38.22%)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에는 실패함에 따라 사실상 양 사 합병이 큰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는 평이 나왔다.

티빙-웨이브 합병의 가장 큰 이점은 꾸준히 악화하는 두 기업의 재무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이다. 특히 웨이브의 경우 2019년 미래에셋벤처투자와 SKS프라이빗에쿼티(PE)로부터 발행한 2,000억원 규모의 5년 만기 전환사채에 발목이 잡혀 있다. 당시 투자 유치 조건은 5년 이내 기업공개(IPO) 의무였다.

이에 따라 웨이브는 올해 11월까지 상장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하고 내년 11월까지는 상장을 완료해야 한다. 최근 경기 침체로 내로라하는 기업들마저 줄줄이 상장을 미루는 가운데, 웨이브는 당장의 적자로 상장은커녕 생존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하지만 티빙과의 합병을 통해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업 체질 개선에 성공한다면 상황이 호전될 여지는 남아 있다.

영업손실 누적으로 위기에 처했던 양사에 합병은 핵심적인 실적 개선 기회다. 차후 두 기업은 협력을 통해 넷플릭스에 대항할 경쟁력을 갖추고, 정부 지원을 한데 모아 한층 활발한 콘텐츠 투자를 이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낭떠러지 끝까지 떠밀렸던 두 토종 OTT 기업이 본격적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과연 침체한 토종 OTT 시장의 분위기는 이번 합병을 기점으로 반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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