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 오감 만족 스릴러의 탄생, ‘살인자ㅇ난감’(넷플릭스)
9일 공개 넷플 오리지널 ‘살인자ㅇ난감’
영상-음악 오가며 다채로운 재미 완성
여성 캐릭터 활용은 아쉽단 평가 대부분
보는 재미에 듣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화려한 연출과 ‘연기 차력쇼’에 가까운 배우들의 열연, 여기에 풍부한 사운드까지 겸비한 <살인자ㅇ난감>의 흥행에 속도가 붙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살인자ㅇ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 이탕(최우식 분)과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 장난감(손석구 분)의 치열한 추격전을 그린 작품이다. 간결한 그림체에 담아낸 촘촘한 심리 묘사로 연재 당시 큰 화제를 모은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탄생했으며, 드라마<타인은 지옥이다>, 영화 <사라진 밤> 등으로 장르물 특화 연출력을 자랑한 이창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한 차원 높은 K-스릴러의 탄생을 예고한 바 있다.
이야기는 평범한 집안에서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청년 이탕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결혼을 앞둔 누나의 청첩장을 접는 탕의 모습 위로 겹치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여느 집안과 다를 것이 없다.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아들 탕은 평범한 대학에 다니며 편의점 알바를 하고, 가끔 친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 특별할 것 없는 청년이다.
늦은 오후까지 편의점 근무를 하는 탕은 종종 술에 취한 손님들을 상대하기도 한다. 보통 때와같이 공허한 눈빛으로 야간 근무를 하던 탕은 유독 심한 취객을 만나 분을 삼킨다. 이후 집으로 돌아가던 길, 그는 자신에게 시비를 건 취객이 길에 쓰러진 걸 발견한다. 취객과 함께 편의점을 찾았던 동료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심한 욕설과 함께 무시당한다. 돌아선 그를 향해 날린 탕의 손가락 욕은 거울을 통해 고스란히 노출됐고, 이는 동료의 분노를 깨운다.
인생에 ‘반격’이라고는 선택지에 없던 탕이지만, 무차별적 폭력 앞에서는 그만 망치를 휘두르고 만다. 지루하기만 했던 탕의 인생은 그렇게 스펙터클로 접어든다. 우발적 살인 이후 끊임없는 환영에 시달리던 그의 죄책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죽은 남자가 사실 신분을 숨긴 채 살아오던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사건을 맡은 형사 난감이 타고난 동물적 감각으로 진실에 다가갈 때 탕은 두 번째 살인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살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물리적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당방위에서 비롯된 살인이 아닌 자기 보호 본능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 하지만 두 번째 살인에서도 피해자가 부모를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탕은 다시 한번 마음의 짐을 벗는다.
이제 탕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이’를 마주했을 때 이를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난감이 연쇄 살인의 가해자인 탕의 실체에 접근하며 탕은 도망치게 되고, 어느 순간 나타난 빈(김요한 분)의 도움으로 살인을 이어나가며 어설프게나마 다크 히어로의 계보 한 구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난감은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끈질기게 탕의 뒤를 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직 형사 송촌(이희준 분)도 나름의 이유를 들어 탕과 빈을 쫓기 시작한다.
살인이라는 폭력적인 소재를 날카롭고도 유머러스한 시각으로 풀어낸 <살인자ㅇ난감>은 단숨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9일 공개 직후 [오늘의 OTT 통합 랭킹] 1위로 직행해 지금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 20일(현지 시각) 넷플릭스가 발표한 글로벌 TOP10 TV쇼(비영어) 부문 1위를 당당히 꿰차면서다.
이처럼 작품이 큰 인기를 모은 데는 극 초반 시청자들을 매혹시킨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큰 역할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점을 절묘하게 연결한 매치 컷이나, ‘짧고 굵은’ 범행 장면에서 이용된 극도의 슬로모션, 캐릭터의 심리 묘사를 위한 얼굴 또는 신체 부위 클로즈업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장치들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형사와 살인범’의 이야기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극 초반 화려한 볼거리로 보는 이들의 눈길을 붙잡은 <살인자ㅇ난감>이지만, 중반부에 해당하는 4화~6화에서는 다소 텐션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탕의 살인을 돕는 ‘사이드킥’ 빈과 또 다른 살인마 촌의 비중이 늘어나며 두드러진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 이창희 감독은 “원작에서도 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등 형식 파괴, 문법 파괴 같은 매력이 있다”며 “그걸 과감하게 각색해서 계속 탕 위주로 이야기를 가느냐, 원작의 결을 유지하느냐를 두고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고 밝혔다. 이어 “송촌 역을 소화한 이희준 배우의 연기를 보는 맛이 있다는 반응도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 감독의 말처럼 등장인물의 비중 축소나 확대는 일부 아쉬운 평가를 만회할 정도의 우수한 평가로도 이어졌지만, 여성 캐릭터의 활용은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탕의 두 번째 살인 피해자인 여옥(정이서 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여성 캐릭터가 지나치게 무력하거나, 성(性)적 대상으로만 소비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법 촬영의 피해자로 묘사된 경아(임세주 분)는 또 한 번의 몰카 피해를 본다는 설정을 위해 성관계 장면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기까지 했다. 이에 관련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무리 시대를 반영한 설정이라지만, 필요 이상의 성관계 묘사는 2차 가해와 다를 게 없지 않냐”는 비난이 폭주하기도 했다.
‘호’와 ‘불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이에서 <살인자ㅇ난감>을 본 모두가 빠지지 않고 “호”를 외치게 만드는 요소는 음악이다. 화려한 시각적 요소가 극 초반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적재적소에 깔린 음악과 효과음은 모든 에피소드에 걸쳐 시청자들의 오감을 자극하며 몰입도를 극대화한다는 평가다. 1화 말미 삽입된 루시드폴의 노래 ‘평범한 사람’의 활용이 대표적 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 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이라는 ‘평범한 사람’의 가사는 허무하게 숨을 거둔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복잡한 상황을 더없이 잘 표현해 준다.
이처럼 ‘미친 선곡’과 빼어난 ‘소리 활용법’으로 <살인자ㅇ난감>을 지루할 틈 없이 가득 채운 음악 감독은 바로 밴드 시나위 출신의 음악가 달파란이다. 1986년 록 밴드 시나위로 데뷔해 대중음악, 영화음악 등을 두루 거친 달파란은 2020년대 이후로는 <킹덤> 시즌2,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글리치> 등 다수의 넷플릭스 시리즈에 합류하며 ‘이야기의 힘’을 완성하는 ‘음악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배우들의 연기 열전 또한 긍정적 평가를 부르는 요소다. 특유의 병약미로 원작을 뛰어넘은 캐릭터를 완성한 최우식을 비롯해 집요함과 동물적 감각으로 똘똘 뭉친 형사 난감을 거친 질감으로 그려낸 손석구, 이번 작품으로 ‘한국판 조커’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이희준의 활약은 “이들 세 배우가 아닌 이탕과 장난감, 송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는 평가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조연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탕을 돕는 노빈 역의 김요한,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원작과는 다른 박충진 형사를 그려낸 현봉식, 딸을 잃은 아버지 상묵의 절절한 부성애를 그려낸 이중옥, 소름 돋는 악녀에서 한순간 싸늘하게 굳어버린 여옥 역의 정이서, ‘의도하지 않은 악행이 용서받기 위해 이 정도는 순수해야 한다’를 온몸으로 보여준 렉스 역의 두 마리 래브라도까지. 모든 배우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존재감을 십분 발휘했다.
<살인자ㅇ난감>은 반쯤 열린 듯한 결말로 시청자들에게 인상적인 질문을 남긴다.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란 물음이다. 화려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풍부한 사운드로 ‘귀 호강’까지 시켜주는 <살인자ㅇ난감>이지만, “한 번의 정주행으로는 작품의 진짜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는 만큼 N차 시청 열풍에 힘입어 한동안 각종 차트의 최상단을 굳건히 사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