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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이틀간 마라톤 협상 끝에 전격 합의 대미 관세 10%, 대중 관세는 30%로 조정 90일간 추가 협상 통해 최종 관세율 결정

미국과 중국이 각자 상대국에 부과했던 고율의 상호관세를 향후 90일 간 대폭 낮추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어느 쪽도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원하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유예 조치가 시행되는 동안 추가 협상을 통해 최종 관세를 결정하기로 했다. 글로벌 최대 무역국인 미국과 중국이 잠정 합의에 도달하면서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인한 시장의 우려도 일정 부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중 관세 30% 중 펜타닐 관세 20% 남겨놔
12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이 상호관세를 각각 115% 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들어 중국 상품에 부과한 관세는 145%에서 30%로,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매겼던 보복관세 125%는 10%로 낮아진다. 양국은 이 같은 합의에 대해 오는 14일까지 조치하기로 했으며, 인하된 관세를 90일간 적용하고 협의 체계를 통해 후속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앞서 양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10~11일 이틀간 진행된 고위급 마라톤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협상 기간 회담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첫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전체적인 재조정이 우호적이면서도 건설적인 방식으로 협의가 이뤄졌다"고 언질을 줬다. 베선트 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양국 대표단은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원하지 않는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며 "양국이 펜타닐 제조에 사용되는 화학 성분의 밀거래를 단속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재취임 이후 마약 대응, 미국 내 제조업 보호 등을 이유로 2월과 3월 중국에 각각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기본관세'로 불리며 모든 중국산 수입품이 적용됐다. 이어 지난달 2일에는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34%의 대중 상호관세를 예고했다. 이에 중국이 보복관세로 맞서자 미국도 맞대응에 나서면서 대중 관세는 84%에서 125%로 단계적으로 인상됐고, 여기에 펜타닐 문제로 부과된 20% 관세까지 더해지면서 미국의 대중 관세는 총 145%에 이르렀다. 중국 역시 미국산 제품에 대해 1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강하게 대응했다.
이번 협상을 통해 조정된 미국의 대중 관세 30%는 펜타닐 유입 등과 관련해 부과한 20%의 관세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협상과 무관하게 최소한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10%의 상호관세를 합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맞서 중국도 최소한의 10% 상호관세를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펜타닐과 관련한 미국의 대중국 관세 20%를 제외하면 양국은 각각 10%의 상호관세를 유지하는 것에 합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中,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펜타닐 원료 공급
트럼프 대통령은 재취임 이후 중국에 고율 관세를 여러 차례 부과하면서 그 배경으로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의 유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인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의 노동자들이 값싼 마약인 펜타닐에 대거 중독되면서 노동력을 상실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중국 기업들이 펜타닐 제조에 필요한 화학 원료를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공급하고, 이 원료로 만든 펜타닐과 관련 물질이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밀반입된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최대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 계층을 겨냥해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강하게 추진해 온 만큼, 펜타닐 남용으로 노동 가능 인구가 줄어들 경우 이민자 추방의 정당성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펜타닐의 유입을 막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 있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의제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펜타닐로 인해 노동 능력을 상실한 노동자는 2022년 말 630만 명으로 25~54세 비중이 60%를 넘는다. 또한 18~49세 미국인의 펜타닐 사망률은 교통사고·총기 사건·자살·암 사망률을 웃돌았다.
이처럼 펜타닐은 수년간 미·중 관계에서 주요 갈등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인 2017년 10월 오피오이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2018년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는 펜타닐 규제 강화를 직접 요구했다. 이번 관세 부과 근거로는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을 꺼내 들었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외국이 미국의 안보·외교·경제에 이례적이고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경우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경제 거래를 통제할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관세전쟁 2막으로 기술 패권 경쟁 심화할 듯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을 계기로 양국 간 갈등 관계가 단기적인 관세 전쟁을 넘어,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경쟁으로 확산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미국과 중국이 펜타닐 문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서 일정 부문 협력의 여지를 보였지만, 기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5G 등 첨단기술 분야의 주도권을 둘러싼 양국의 패권 경쟁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의 대중 기술 압박은 2022년 10월 반도체 수출 통제에서 시작해 2023년 193㎚(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파장의 DUV(심자외선) 노광장비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했다. 이는 중국의 AI 연구와 첨단 반도체 개발을 직접 제한하려는 조치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AI 기술 개발과 관련한 패권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이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ICT 기술수준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AI 전반적 기술 수준은 미국(100%)을 필두로 중국(92.5%), 유럽(92.4%), 한국(88.9%), 일본(86.2%)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의 ‘매그니피센트7(메타·알파벳·아마존·애플·테슬라·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은 첨단 기술 분야를 선도하며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다만 이들 빅테크는 최근 밸류에이션 우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 경제 성장 둔화 전망 등으로 주가 변동 폭이 커지며 불확실성에 노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중국은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자국 기업을 전폭 지원하며 국가 차원의 AI 발전을 강력히 추진 중이다. 특히 ‘테리픽 텐(Terrific 10)’으로 불리는 BYD,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메이퇀, SMIC, 지리차, 바이두, 넷이즈, 징동닷컴 등 중국의 주요 기술 기업들은 올해 1월 이후 주가가 35%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100의 1.5% 상승과 M7의 4.9% 하락을 압도하는 수치다. 이러한 성과는 시 주석의 기술 산업 지원 의지, 딥시크 등 중국 AI 기업들의 기술적 도약,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 등에 기인한다. 특히 딥시크의 AI 모델 발표는 글로벌 기술 생태계에 충격을 주며 중국 기술 기업들의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