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아름다울 거라는 착각 ‘욘더’ [리뷰]

이준익 감독의 첫 OTT 진출작 ‘욘더’ 신하균X한지민 휴먼 멜로 사랑하는 아내의 안락사 이후 사후 세계를 다룬 이야기

사진=티빙

기억으로 구성된 가상의 세계에서 재회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욘더>가 지난 14일 티빙(TVING)을 통해 공개됐다. 이달 5일을 시작으로 14일에 막을 내린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온 스크린 섹션을 통해 관객들과 먼저 만났다. 잔잔하면서도 깊이와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또한 ‘욘더’는 이준익 감독의 OTT 첫 진출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플랫폼 뿐 아니라 그 동안 <동주>, <사도>, <자산어보> 등 과거 시대물을 주로 만들어 온 이준익 감독이 근미래의 설정이라는, 나름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셈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10년 전 원작 시나리오를 알게 되었고 오랜 시도 끝에 6부작으로 완성하게 됐다고 한다.

원작 소설 <굿바이, 욘더>는 2040년대 한국, 유비쿼터스 환경의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남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고, 메일 한 통으로 육신을 버린 채 아내와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욘더를 선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극 중 욘더는 ‘죽음 없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뜻한다.

◆ 사랑하지만 일방적일 수 있는 기억과 결정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잊혀지게 만든다. 기억이 영원히 저장될 거라는 인간의 바람은 어떻게 보면 환상에 가깝다. 기억이 쌓이고 지워지는 과정은 당연하지만, 때로 서글프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상흔의 감정과 기억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농도가 점차 옅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하게 된다. 주인공 재현(신하균 분)의 부인이자,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이후(한지민 분)는 그렇게 사랑하는 감정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고통받는 것은 남편 재현이다. 감독 또한 이 작품에서 자신의 기억을 ‘욘더’에 저장하고 떠난 아내의 선택이 이기적이라고 한다. 재현은 이후가 죽고 메일을 받기 전까지 ‘욘더’의 존재를 몰랐을 뿐만 아니라, 욘더를 선택한 아내를 결정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다. 기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 일방적인 것이다.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를 수 있고 그것이 객관적인 기록물이 아닌 이상, 분명 오류가 존재한다. 현실의 부부 사이와 인간 관계에서도 그 오류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불거진다.

◆ 기억과 현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
그럼에도 이 작품이 의의를 가지는 것은 삶의 철학적 문제를 관통하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생각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과거 우리의 기억은 정말 진실일까? 그 기억이 만약 잘못된 것이라 기억의 주체인 존재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풀기 어려웠던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오랜 시간 스스로 괴롭혔던 그 기억은 사실 다운로드 하듯, 삭제하듯 지워버릴 수 있으며 어떤 사건과 관련된 좋지 않은 기억도 다른 당사자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어딘가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진리도 발견하게 된다.

사진=CJ ENM

언뜻 작품의 외양은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2014년작 <She>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 기술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구현될 것 같은) 기계와 일상을 공유하는 첨단 문명 속에서 살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메말라 있는 주인공의 정서적 상태를 더 몰입하게끔 만들었던 <She>와 달리 욘더의 근미래적 설정은 그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다소 인위적일 수 있는 작품의 설정을 튀거나 두드러지지 않게 하는 정도로만 그친다.

시대적 배경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이준익 감독의 색깔이 잘 묻어나는 작품이다. 감독의 첫 휴먼 멜로작이라고 하지만 항상 사람 냄새가 짙게 풍기는 작품을 제작하는 감독인만큼 소재와 이야기를 능숙하게 버무리고 풀어낸다. 특히 시대와 상황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체감하고 고뇌하는 인물을 다루며 주인공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 묵묵히 지켜 봐주는 감독 특유의 시선이 여전히 잘 구현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티빙과 파라마운트+(플러스)의 첫 번째 공동투자작으로 국내는 물론 중남미, 캐나다, 호주,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해당 플랫폼들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된다. 서양권 문화에서는 신선하고 새로울 수 있는 사후 세계를 소재로 (사극이나, 좀비 혹은 외계인과 같은 판타지 물이 아니다!) 다룬 것이 영리한 선택처럼 보인다.

주인공 재현 역을 맡은 신하균은 극 중 인위적으로 설정된 상황 속에서도 격정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한다. 복합적이면서 쉽지 않은 감정을 순진한 얼굴에 담아내는 한지민의 연기도 작품의 톤과 잘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하균과 한지민은 드라마 <좋은 사람> 이후로 19년 만에 재회하여 부부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 외에도 이정은, 정진영 등이 뛰어난 연기로 상황과 분위기를 잘 만들어 줌으로서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에 몰입하는 데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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