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파괴 4차원 드라마 ‘글리치’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글리치’ 시도는 좋았지만, 아쉬운 만듦새 전여빈X나나 열연이 살린 드라마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글리치>가 2주째 TOP 10 안에 머무르며 신작으로서 체면을 세우고 있다. 대중성이냐 마니아층 공략이냐의 기준에서 본다면 <글리치>는 양쪽에 발을 걸친 애매한 드라마다. 장르파괴 혹은 장르믹스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시각과 도전정신을 기본 장착했지만, 내 갈 길 가겠다는 듯 눈치 안 보고 이야기를 풀어낸 듯하면서도 결국은 대박을 노리고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처럼도 보인다. 마치 박리다매를 목표로 한 잡화점처럼 말이다.
◆ SF라니, 일단 도전정신에 박수를
K컨텐츠가 하나의 장르이자 트렌드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전 세계 다양한 팬층을 갖게 된 데 OTT 서비스의 역할이 컸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터. 그래서일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속담처럼 그야말로 쏟아지다시피 새로운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다. 번호표 뽑고 기다리듯 공개 대기 중인 작품들도 많고 히트 친 작품들은 잇따라 속편 제작에 들어가고 있다. 좀비물, 크리쳐물, 서바이벌 데스게임 등 국내 시장에서 시도하기 힘든 장르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되고 최소 중박 이상의 성과를 내는 와중에 유독 힘을 못 쓰는 장르가 있었으니 바로 SF 미스터리물이다. 그런 면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는 시도 그 자체만으로 관심과 박수를 받을 만 하다.
<글리치>의 시나리오를 쓴 진한새 작가는 전작 <인간수업>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인간수업>이 소재의 독창성과 섬세한 캐릭터 표현으로 주목 받은 데 반해 극이 진행될수록 몰입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신작 <글리치> 소재의 신선함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에 비해 시청자를 잡아끄는 흡인력은 부족해 보인다. 새로운 시도이자 중박의 바탕일 수 있는 ‘장르 파괴’ 역시 호불호의 기로에서 어느 쪽을 택할지 아슬아슬하게 한다. SF물인지, 스릴러인지, 추격극인지, 성장영화인지, 로드무비인지 혹은 모두 다인지 헷갈릴 동안 스토리를 쫓아가는 집중력이 자꾸만 흩어지는 이유는 초반 부진한 속도감과 애매한 떡밥들 탓이 아닐까.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지지부진하게 마무리되는 드라마들이 떡밥 처리 미숙 때문임을 생각할 때 <글리치> 역시 호기심을 자극하는 몇 가지 떡밥들이 명쾌하기 아귀를 맞추지 못하고 찝찝함을 남긴다.
◆ 남자친구가 외계인에게 납치됐다? 시작은 참신했지만
환상을 보는 주인공 지효(전여빈 분)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남자친구가 단순 실종이나 잠적이 아닌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의심하며 그를 찾아 헤맨다는 스토리는 참신하다. 운명적으로 재회한 학창시절 절친 보라(나나 분)의 똘끼와 내면의 상처도 스토리의 극적 요소로서 제 역할을 한다. 병맛 느낌의 UFO 커뮤니티 회원들과의 좌충우돌도 나름의 웃음 포인트는 되지만 보면 볼수록 ‘계속 볼까 그만 볼까’ 고민에 빠지는데, 떡밥도 떡밥이거니와 그럴 법하다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도 하나의 이유.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탈선의 길을 걸은 보라가 대를 저버리지 않는 예쁜 또라이로 성장, 대체로 안하무인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진지모드로 극의 몰입도를 책임지는 데 반해, 남몰래 환상을 본다는 이유 하나로는 설명하기 힘든 주인공 지효의 맹함과 우유부단함은 동정심보다는 짜증을 유발한다. 이는 연기보다는 대본과 연출의 문제로 보인다. 아쉬움과 찝찝함 속에서도 마지막회까지 보게 만든 힘이 연기 구경하는 재미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 배우들의 열연이 살린 드라마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글리치>의 가장 큰 재미는 스토리나 연출이 아닌 명배우들의 열연이다. 몸을 사리지 않은 전여빈과 늘 그렇듯 실망시키지 않는 이동휘, 고창석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어릴 적 날라리 친구 보라 역의 나나, 사이비종교의 주책없는 집사 역을 맡은 배우 백주희의 연기가 압권이다. 배우가 연기를 잘 해서겠지만, 주인공임에도 응원보다는 왜 저러나 싶을 때가 많은 지효, 역시 과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보라, 이해 안 되는 사이비종교 핵심인물임에도 자꾸만 정이 가는 서집사. 2% 부족한 스토리와 연출을 배우들의 명연기가 채웠다.
드라마의 제목 <글리치>(GLITCH)는 ’작은 문제, 결함, 돌발사고, 갑작스런 고장‘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드라마 곳곳엔 전자기기 오작동이 복선이자 떡밥으로 등장하고, 이는 외계인 존재를 확신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한편, 작은 문제나 결함은 비단 기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각각의 등장인물들과 사이비종교 맹신자들의 상처와 결함은 제목이 가리키는 또 다른 방향이다. 그간 사이비종교를 소재로 하는 스릴러나 수사물은 제법 있었지만, 추종의 대상이 이단의 창시자가 아닌 외계인이라는 아이디어는 신박하다.
대부분의 시리즈물이 그렇듯 날 잡아 정주행하기 좋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글리치> 컨텐츠가 다양한 만큼 소비층도 각양각색이니, 배우들의 열연을 감상하고 새로운 소재가 주는 재미를 맛보고 싶다면 도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