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로 읽는 한국경제사 – 2.아진자동차 인수
IMF구제금융 시점의 한국 자동차 업계 묘사, 20년이 지난 지금도 건실한 기업 없어 무리한 고용승계에 놀라는 할아버지의 속내에는 그룹 붕괴에 대한 걱정도 드라마 속 아진자동차는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재벌집 막내아들’이 이번에는 IMF구제금융기에 무너져가던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훑고 갔다. 스토리는 순양자동차가 아진자동차를 인수하는 이야기다.
할아버지 진양철이 만년 꼴찌인 순양자동차를 1등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IMF로 위기에 빠진 아진자동차를 인수하려했으나, 한도제철을 인수하기 위해 사내유보금을 다 쓴 상황이라 자금력이 부족했다. 진도준(송중기)은 전생의 윤현우가 아진자동차에 다니던 아버지가 실직하고 어머니가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던 기억을 더듬어 아진자동차를 인수하는 것에 더해 고용 승계까지 시도한다. 자금력이 부족한 할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용 승계를 거부하지만, 진도준은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여 아진자동차를 인수하는데 성공한다.
IMF구제금융 시점, 한국의 자동차 업계는 어땠나?
당시 한국의 자동차 업계는 5개의 대기업이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며 중복투자로 몸살을 앓던 상황이었다. 현대, 기아, 대우, 쌍용이 자동차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고, 삼성이 새롭게 자동차 산업에 진입하려고 했으나 정권의 반대로 번번히 고배를 마시며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만년 꼴찌인 자동차 회사는 쌍용이었다. 현대는 십수년간의 노력 끝에 자체적인 엔진 기술을 개발해 트럭 생산 부분에서 글로벌 1위업체인 도요타와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됐고, 기아와 대우는 자체 기술력보다 해외 모델을 수입해와 판매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대우는 ‘르망’ 등의 모델을 통해 해외 기술로 생산된 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해 판매함으로써 유지비의 핵심인 부품 단가를 낮추는데 성공한 상황이었다. 쌍용은 당시부터 특이한 차량을 판매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이후 2005년에 중국에 매각되면서 여러차례 손 바뀜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개성 강한 차량을 만드는 업체라는 특징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은 닛산의 부품을 그대로 들여와 재조립하는 것에 그치는 상황이었다.
선진국형 산업에 1-2개의 기업들만 ‘올인(All-in)’을 해도 힘든 도전인데, 무려 4개의 회사가 중복 투자를 한데다, 대기업이 하나 더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려는 상황이었던만큼, 정부는 무리한 투자를 포기할 것을 대기업들에게 종용했다.
이른바 ‘빅딜’을 통해 산업간, 그룹간 합종연횡을 반강제적으로 기업들에게 요구했고, 결국 현대-기아 그룹과 대우-쌍용 그룹간의 결합으로 종지부를 짓는다. 현대와 기아는 글로벌 선두업체에 진입하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됐지만, 대우는 부도를 맞으면서 해외 업체인 ‘르노’에 넘어갔고, 쌍용은 몇 차례 손바뀜이 있었으나 지금도 경영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는 KG그룹이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
아진자동차는 대우? 기아? 쌍용?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만년 꼴찌 자동차 회사의 모티브가 되는 회사는 쌍용 자동차나 삼성의 자동차 조직으로 보인다. 대형 자동차 회사 인수 없이는 현대와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은 양사 모두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와 삼성 모두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삼성은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달러화 매출이 급감한 상태라 자금력이 부족했고, 결국 공격적인 투자를 반도체에만 집중했다. 현대는 무리한 투자를 통해 기아자동차를 인수했지만, 2000년 들어 결국 모기업인 현대건설이 부도를 맞는다.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던 ‘르노’는 부채 청산에 오랫동안 시달려야했고, 쌍용은 전술한대로 20년이 지난 지금도 경영정상화를 이뤄내지 못한채 손바뀜만 이뤄지는 중이다.
그나마 성공적인 인수라고 평가받은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마저도 모기업인 현대건설이 부도가 날 상황이었으니, 당시 자동차 기업 인수는 말 그대로 ‘폭탄을 짊어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진양철이 손자 진도준에게 고용승계는 미친생각이라고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고용승계를 해주는 순간 수천억의 추가 비용이 지출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쌍용자동차는 지난 5월에 KG그룹에 매각을 진행하면서 운영자금 5,600억원 수혈을 감행했다. 급여가 밀려있었기 때문이다. 1998년 당시의 자동차 그룹 빅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지간한 대기업 하나가 부도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용승계가 그렇게 무서운거야?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 이상으로 고용승계는 엄청난 비용을 인수자에게 요구한다.
기업M&A에 밝은 전직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 매각 소식이 알려지고 내부 설비에 대한 실사 담당자가 방문하는 날이 되면, 노조원 수천명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데모를 하는 것이 일상이고, 궁극적으로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합병위로금’ 명목의 지원금이라고 한다. 1인당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요구하는 것이 다반사고, 수천명에게 천만원씩 합병위로금이 지급될 경우 수 백억원 이상의 추가 자금이 지출된다. 또한 해고시 퇴직금, 위로금 등으로 적게는 3개월, 많게는 1년치 급여가 지급되는 통례를 볼 때, 천 억원 단위의 추가 자금이 지출될 가능성이 높아 인수전에서 고용승계를 선뜻 약속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도 한도제철 인수에 모든 자금을 다 쓴 진양철 회장이 고용승계에 맹렬히 반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자칫 그룹 전체가 부도로 망가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떠안아야하기 때문이다. 무리한 인수로 부도를 맞은 사례는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2006년, 2008년 각각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들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산산조각 났고, 모기업인 금호산업마저도 경영난에 빠진 상태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모두 새로운 주인을 찾았고, 심지어 그룹의 중심이었던 아시아나도 매각이 진행된 바 있다.
기업 오너들 입장에서는 고용승계가 무시무시한 폭탄을 떠 안게 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진도준은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여 자금 부족을 타파했다. 그 투자자의 속내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그런 투자자들이 지분 투자금이 회수되지 않자 투자금에 9%의 이자를 요구하면서 붕괴했다. 드라마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오너들은 그런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s)도 싫어한다. 자칫 자신이 평생 일군 기업이 일순간에 망가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