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교섭’, ‘국까’ 사건에서 ‘국뽕’을 뽑아내는 스토리 텔링 [리뷰]
‘교섭’, 샘물교회 사건의 초점을 선교단에서 구출 요원에 맞추며 논란 피해 황정민, 현빈의 연기와 시각미는 글로벌 경쟁력이 느껴지는 수준 이야기의 긴박감은 여전히 부족, 단조로운 구출 서사에 지루함도 느껴져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에 수십 명의 한국인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억류되어 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한국인이 해외에서 고생하고 있으니까 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드높았다. 그러다 불과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샘물교회라는 분당의 어느 교회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모여 사는 땅에 선교 활동을 하러 갔다는 이야기, 심지어 그 여행을 외교부가 여러 차례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우며 베이징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까지하며 외교부를 속인 후에 위험지역으로 날아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여론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굳이 세금 버려가며 종교 단체의 광신도들을 구해줘야 할 필요가 없으니 무시해야 된다는 과격파부터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한국인이 해외에서 피랍되는 사건을 방치하면 누가 해외여행을 다니겠냐는 온건파까지 다양한 반응이 있었지만, 일부 개신교 신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억지 선교 활동에 나섰던 일부 종교인들의 몰지각한 행동이 국가적 피해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됐다.
분노할 준비 하고 본 영화, 구출 작전에 초점 맞추면서 기독교 선교활동 논란 피해
지난 2014년에 같은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 ‘시선’이 샘물교회 선교단에 대한 변명으로 가득찼던 덕분에 이번 ‘교섭’에도 우려가 컸다. 자칫 종교 논리와 국가 이익이 부딪히는 정치적인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우려와는 달리 의외로 100분 남짓의 짧은 영화에 샘물교회 관계자들에 대한 강한 불만이 표현될만한 구간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초점을 피랍된 한국인들이 아니라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원칙주의 외교관과 현실타협가 국정원 직원에 맞췄기 때문이다. 샘물교회에 대한 지식을 알고 영화관에 앉으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영화 내내 ‘성격 안 맞는 콤비’인 외교관과 국정원 직원이 피랍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데 집중하느라 2007년 당시 상황과 영화 속 현실을 비교하려는 집중력이 자꾸만 흐트러졌다.
영화 마지막 무렵, 구출된 샘물교회 신자들이 고가의 국적기 1등석에서 편하게 귀국하는 모습을 보며 외교부 차관이 ‘무슨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땄냐?’며 분노를 표현하는 장면이 그나마 2007년 당시 여론을 반영했을 뿐이다. 그 외 대부분의 장면은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당시 긴박하게 돌아갔던 속사정을 영화적 시선에서 풀어내고, 관람객들에게서 ‘한국 공무원들이 이만큼 고생하셨습니다. 박수라도 쳐 줍시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만 있는 것 같다.
영화 성공을 위해 국내 17%에 달하는 개신교인들의 감정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지였는지, 정말 해외에서 한국인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고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자는 의도의 반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노할 준비는 헛수고가 됐다. 오히려 외교관의 고뇌와 감정적 동요를 밀도 있게 표현한 황정민의 연기력과 어쩌면 한국에서도 ‘톰 크루즈’ 같은 중년 남성 액션배우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들게 하는 현빈의 화려한 액션씬들에 ‘눈 호강’을 했을 뿐이다.
‘국까’적 시선 밑에 깔린 ‘국뽕’적 시선
샘물교회 사건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치욕적인 사건 중 하나다. 외교 협상이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도 아니고, 피랍됐던 23명의 한국인 중 2명이 사망했기 때문도 아니다. 해당 선교 활동 사건은 한국의 종교의식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미국, 유럽, 터키 등의 나라들에서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언급이 될 만큼 조롱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까’적 사건, 그것도 매우 치욕적인 ‘국까’적 사건이라 한국 언론에서 차마 다루지 못하는 사건 중 하나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물교회 선교단원들 중 일부가 구출 비용을 부담하라는 요청에 ‘불 꺼줬다고 소방서에 돈 내야 하나?’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여전히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 중 하나다.
사건을 둘러싼 이익집단과 국민 여론의 부딪힘이 화면으로 옮겨지면서 ‘국까’적 사건에 또 한번 국민 여론의 지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주제를 골랐으나, 임순례 감독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제보자’ 등에서 언제나 불합리, 부조리 뒤에 숨겨진 열정 넘치는 한국인들의 노력에 초점을 맞췄다. ‘국까’적 상황을 수습하는 ‘국뽕’적 역량을 갖춘 인재들에 초점을 맞춰주는 덕분에 보는 사람이 좀 덜 불편해진다. 아니 순간순간 뿌듯해진다. 쫓아오지 마라고 위협사격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하나만 믿고 추격전을 벌이는 국정원 직원의 선글라스 낀 모습을 배우 현빈이 헐리우드 배우급으로 연기해줘서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위험에 빠진 한국인을 구하기 위해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면에서 노력하고 있을 것만 같다는 믿음을 준다.
실제로 ‘선글라스 낀 국정원 직원’은 사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다. 협상이 진행되던 2007년 8월 당시, 외교부 담당자 옆에는 선글라스를 낀 근육질의 남성이 항상 서 있었다. 현지의 위험한 사정 탓에 보디가드인 줄 알았던 관계자가 실제 구출 협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 해 국정원 지원자가 추가로 늘어나기도 했다는 후문도 있을 정도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국뽕’은 성공, 영화 전체의 긴장감 유지는 실패
‘국까’적 사건을 최대한 감추고 구출 작전 중의 교섭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영화 전체의 서사가 망가진 부분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24시간’이라는 장치 속에 정부 관계자의 기존 협상 전략으로 충분할 것이라는 안이함이 교섭을 실패로 이끄는 모습, 급박하게 이동하는 중에 폭탄 테러가 나서 시간을 못 맞추는 모습, 다시 시간이 연장되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모습 등등 제한 시간 속에 노력하고 있는 배우들의 땀에도 불구하고 대사 속의 긴박감이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이미 현실에서 23명 중 2명이 사살되고 21명이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영화가 더 촘촘하게 짜여져야 했을 것이나, 대사의 긴장감이 실감되지 않는 단조로운 서사의 반복으로 끝난다.
당시 미국이 협상을 지원해주다 외교적인 이유로 발을 뺐던 부분, 아프가니스탄 행정부의 무능함을 전혀 알지 못하고 단순하게 유럽 문명국가들과의 협상처럼 대응했던 부분들을 뼈아프게 지적했다면 어땠을까? 부족장 회의를 찾아간 외교관이 좀 더 날카로운 협상을 이끌었다면 어땠을까? 위협사격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하나만 믿고 사막을 가로지르던 국정원 직원이 단순히 멋진 액션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주민들과 탈레반의 긴장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줬다면 어땠을까? 샘물교회 당사자들이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이 두려워서 주제를 틀었다면, 다른 부분에서 더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긴장감의 공백을 메워줬어야 영화 속 사건의 긴박함이 좀 더 관객들에게 와 닿았을 것이다.
실제로 2021년 여름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고 나오면서 탈레반과 협상했던 당시의 미국 전략, 아프간 행정부의 무능한 대처, 탈레반의 전격적인 수도 카불 점령 등이 충분히 오마주 될 수 있을 만한 사건 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텔링’이 너무 단조로웠다.
샘물교회 선교단 21명을 풀어주면서 최소 378억 원, 최대 6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하게 됐던 탈레반 반군이 14년이 더 지나 2021년에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의 주인이 되는데 아마 그 ‘몸값’이 큰 자본금이 됐을 것이다. 아마 그들 탈레반이 큰 금액을 불렀을 때는 어떤 무기와 자재를 구매해서 정부군에 맞설 수 있는 도구로 삼을 것이라는 계획이 있었을 텐데, 영화는 탈레반도, 부족장 회의도, 아프가니스탄 행정부도 모두 곁가지에 불과하고 오직 명배우 2명의 힘으로만 이야기를 끌고 나갈 뿐이다.
지난 2014년 같은 사건을 영화화한 ‘시선’은 되려 선교단을 미화하면서 전국 관객 수 1만 명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번 ‘교섭’은 초점을 선교단에서 구출 단으로 바꾸고, 구출 단의 배우들이 ‘하드캐리’를 해준 덕분에 ‘국뽕’이 ‘차오르는’ 영화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개런티 높은 명배우들을 모셨음에도 여전히 ‘스토리 텔링’에서 한국 영화의 한계를 만난 것 같아 조금 아쉽다. 다음번에 같은 사건으로 영화를 만들 때는 한국이 좀 더 할리우드 수준에 가까운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를 가진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