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재부상한 티빙-웨이브 합병설, 더 간절한 건 웨이브?
티빙-웨이브 합병설에 양 사 관계자 “진행 중인 사항은 없어” 웨이브, ’19년 투자 받은 2,000억원 대가 지불해야 당장 급하지 않은 티빙, 다만 韓 시장 노린 해외 OTT 견제 필요해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설이 또다시 나왔다. 지난 2020년부터 두 회사의 합병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제기됐다. 올해만 해도 벌써 두 번째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실제 합병이 쉽게 성사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몇 년째 합병설만 나도는 티빙–웨이브
이달 초 OTT 업계에서는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박성하 SK스퀘어 대표이사 사장, 구창근 CJ ENM 대표이사 등이 티빙과 웨이브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당시 티빙의 1대 주주인 CJ ENM과 웨이브 1대 주주인 SK그룹의 최고경영자(CEO)들의 이름이 언급된 만큼 합병설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18일 CJ ENM 측은 구체적으로 진행 중인 사항이 없다고 밝혔고, 웨이브 역시 “진행 중인 것이 없다”고 전했다. 이번에도 ‘설’로만 그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기업 간의 인수합병(M&A) 자체가 비밀 유지와 함께 계약되는 것이 관례인 만큼 합병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결국 CJ ENM에서 결정하지 않으면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사실상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조급한 웨이브, 계산기 두드리는 티빙
이런 가운데 ‘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의무 지분율 문제’가 합병을 설로만 나돌게 하는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2020년 전면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의무지분율 요건을 단독 지배기준에 준하는 30%(상장회사), 50%(비상장회사)로 상향 조정했다. 다만 개정법 시행 전에 설립된 지주회사와 자·손회사의 경우 기존 규정인 의무지분율 요건 20%(상장회사), 40%(비상장회사)에 따라야 한다.
이에 따라 개정법 규정 전에 설립된 CJ ENM과 티빙의 경우 지주회사인 CJ ENM이 비상장 자회사인 티빙 주식의 4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현재 CJ ENM은 티빙 주식의 48.9%를 갖고 있다. 하지만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하게 될 경우 CJ ENM은 합병법인 출범에 따른 주식량 증가로 지분이 희석돼 의무지분율 유지를 위한 추가 지분 매수에 돌입해야 한다. 합병 이후에도 추가 비용 지출이 뒤따른다는 얘기다.
웨이브의 입장은 어떨까. 웨이브는 지난 2019년 미래에셋벤처투자와 SKS프라이빗에쿼티(PE)를 대상으로 2,000억원 규모의 5년 만기 전환사채를 발행한 바 있다. 당시 투자 유치 조건은 5년 이내 기업공개(IPO)였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내년 11월까지 상장을 진행해야 하지만 경기 침체로 인해 상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웨이브에서 IPO 진행 포기를 결정한다면, 사채 만기일인 2024년 11월 28일에 투자금 상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만기 상환 절차를 거칠 경우 주식 미전환 사채의 권면 총액과 연복리 3.8%가 적용된 이자를 더해 한 번에 상환해야 한다. 즉 원금 2,000억원에 이자 410억원을 더한 2,410억원을 일시 상환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웨이브가 최근 4년 동안 영업손실 규모가 누적된 데다 지난해에도 1,213억원의 영업손실 기록한 탓에 자금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앱 통계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3년 4월 기준 웨이브앱 신규 설치 건수는 16만여 건으로 쿠팡플레이 49만여 건, 티빙 37만여 건에 비해 절반 이상 적다. MAU 수치 역시 380만여 명으로 티빙 490만여 명, 쿠팡플레이 430만여 명에 비해 약세다.
이처럼 웨이브의 가치가 하락 추세에 접어든 만큼 티빙 입장에서는 오래 기다릴수록 비용 부담이 줄어 합병에 속도를 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티빙, 마냥 여유로운 건 아니다
만일 웨이브가 IPO를 진행하고 기적적으로 상장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내년 기업공개가 완료되면 사채권자들이 주식 전환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웨이브가 발행한 주식 수는 총 566만1,040주로 SK스퀘어가 40.5%의 지분을 보유해 지배력을 갖고 있는 상태다. 전환권이 행사되면 새로 87만861주가 추가돼 총주식 수는 653만1.901주로 늘어나게 된다. 이 경우 사채권자가 13.3%의 지분을 취득함에 따라 SK스퀘어의 지분은 35.1%까지 희석된다. 즉 지배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SK스퀘어는 웨이브의 주식을 추가매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규모의 투자금을 웨이브에 지출한 SK스퀘어로써는 더 이상의 추가 비용을 지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결국 웨이브에게 남은 방법은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과 같은 대박 콘텐츠의 성공으로 견인될 폭발적인 성장이나 티빙과의 합병밖에 없다.
SK와 CJ 모두 큰 틀에서 합의는 했다고 밝혔지만 이렇다 할 CJ ENM의 행보는 관측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아직 한국 시장에 자리 잡지 못한 디즈니플러스나 여타 해외 OTT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인수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두 회사의 합병설은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