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커팅’ 현실에 울부짖는 유료 방송, 정작 토종 OTT도 ‘글로벌 공룡 먹잇감’
유료 방송 “OTT 업체에도 방송발전기금 걷어야” OTT 업계 “방송발전기금, 오히려 역차별 될 것” 넷플릭스 영향력 늘어만 가는데, 정·재계는 ‘파이 나누기’에만 ‘열중’
넷플릭스 등 OTT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국내 방송계가 정체에 빠졌다. 지난해엔 국내 유료 방송 가입자 증가율이 처음으로 0%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유료 방송을 해지하고 OTT로 옮겨 가는 일명 ‘코드 커팅(Cord-cutting)’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유료 방송 가입자 증가율, 집계 이래 최초로 1% 아래까지 떨어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IPTV·케이블TV·위성방송 등 유료 방송 가입자는 3,624만8,397명으로 상반기 대비 0.67%(24만 명) 증가에 그쳤다. 집계 이래 가입자 증가율이 1% 아래로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플랫폼 내에서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OTT를 편리하게 볼 수 있도록 한 IPTV는 가입자가 소폭 증가했지만,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가입자가 줄었다.
반면 국내 OTT 앱 사용자는 증가했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OTT 앱 설치자는 올해 4월 기준 3,008만 명으로 집계됐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증가율이 112.3%, 48.3%, 26.8%, 7.5%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국내에서도 OTT 이용자 수가 유료 방송 가입자 수에 육박하게 됐다.
유료 방송 사실상 ‘고사 위기’
OTT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유료 방송이 사실상 고사 위기에 놓이자, 일각에선 OTT 업체에도 방송발전기금을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막상 국내 OTT 업체들 또한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OTT 공룡들에 밀려 매년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6월 기준 넷플릭스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1,142만 명으로 국내 주요 OTT인 티빙(519만 명), 웨이브(395만 명)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지난해 기준 국내 OTT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넷플릭스가 38%로 1위였고, 그 뒤를 토종 OTT인 티빙(18%)과 웨이브(14%)가 이었다. 그나마 높은 점유율을 보이던 티빙과 웨이브의 상황도 그다지 좋지는 못하다. 티빙과 웨이브는 지난해 각각 1,191억원, 1,21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넷프릭스의 독주를 막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으나 마땅한 성과가 나오지 않은 탓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 OTT 업계 관계자는 “OTT에 방송발전기금을 부과해도 넷플릭스엔 국내법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가뜩이나 적자에 시달리는 국내 OTT에 역차별만 될 것”이라며 “막대한 자본을 지닌 넷플릭스가 좋은 콘텐츠들을 독점해 유료 방송이나 국내 OTT는 콘텐츠 수급조차 힘든 상태”라고 토로했다.
넷플릭스에서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결국 모든 결정권은 넷플릭스의 수중에 남아 있단 점도 문제다. 실제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보상’ 건에 대해 넷플릭스는 입을 꾹 닫고 있다. 넷플릭스 출연료 기준과 추가 보상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탓에 적절한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국방송연기자노조는 지적했다.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측은 “넷플릭스와 대등하게 계약할 수 있는 건 소수의 톱스타나 유명 작가, 유명 연출가 정도뿐”이라며 “대부분의 스태프, 연기자는 유불리를 떠나 을의 관계에서 계약을 강요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넷플릭스가 우리나라를 통해 수익을 많이 창출하는 만큼 스태프, 연기자들에 적정한 대가가 배분돼야 하는데, 너무 일부에만 치중돼 있는 게 현실”이라며 “넷플릭스 작품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조·단역 배우들은 급여가 정체되거나 감소했다”고 일갈했다.
글로벌 공룡에 먹히는 토종 OTT, 정작 국내 정·재계는
이렇게 글로벌 거대 기업의 손에 국내 시장이 좌지우지되는 동안 국내 정·재계는 손 안의 파이만 두고 아둥바둥 싸우고 있어 업계의 불만이 쏟아진다. 이전부터 토종 OTT 티빙과 웨이브 사이의 합병설이 업계에서 돌고 있었으나, 결국 최근까지도 실질적인 합병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간 기 싸움과 더불어 ‘독점 플랫폼 탄생’에 대한 업계의 불안까지 겹치며 사실상 넷플릭스에 대항할 만한 유일한 수단이던 합병마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도 업계 입장에선 속 아픈 일이다.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은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를 방통위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당시 언론단체와 야당은 이 후보자를 ‘언론 장악 기술자’로 지목하며 그의 방통위원장 인선에 적극 반대했다. 특히 방송기자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7개 언론현업단체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이동관 홍보수석실이 국정원을 동원해 공영방송과 문화예술계까지 광범위하게 사찰하고 인사와 방송편성에 노골적으로 개입했음이 드러났다”며 “이런 인물을 방통위 수장에 앉혀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다만 업계는 “국지적인 논란만 바라보다 글로벌 업계 흐름을 다 놓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이 위원장 임명이라는 국지적 사안에 매몰돼 여야 간 혈투가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업계 내 문제 해결은 하나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대로 가면 토종 OTT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여야 간, 사회단체 간 이데올로기 다툼을 멈추고 업계의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이어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