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스타] 5년의 공백이 무색한 배우 장근석

데뷔 30년, 어엿한 대선배 장근석 5년 공백 끝 선택한 OTT 오리지널 ‘미끼’ “새로운 나를 만나고픈 욕심”

사진=쿠팡플레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눈을 감고 수염을 지운다. 곧바로 해사한 얼굴이 떠오른다. 5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꽉 찬 존재감, 장근석이 <미끼>로 돌아왔다.

27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미끼>는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희대의 사기 사건 범인이 사망한 지 8년 후, 그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며 이를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스릴러 드라마다. 거대 금융사기와 미스터리한 살인사건. 최근 홍수처럼 쏟아지는 장르물들을 떠올린다면 단숨에 시청자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주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비슷한 장르, 비슷한 주제들 속에서 시청자들은 ‘배우’를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한다.

<미끼> 기자 시사회 당시 그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뻔한’ 장근석의 이미지를 부수고 새로운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 5년이라는 긴 휴식 끝에 나온 생각이고, 앞으로의 연기 인생을 위한 목표다”라고 말하며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작품은 공개와 동시에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플랫폼이 주 2회의 순차 공개를 결정한 탓에 모든 이야기를 내달리듯 볼 수는 없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쫀쫀한 전개를 깊이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는 것.

다만 장근석의 연기 변신에는 다소 평가가 엇갈린다. 오랜만에 본업인 연기에 충실한 그의 모습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청자가 환호하고 있지만,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 “그동안의 장근석 이미지와 너무 달라 적응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장근석 역시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걸까? 그는 “억지로 내 모습을 벗어나려고 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조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며 “내게는 커다란 도전이기도 했던 이번 작품을 함께 지켜봐 달라”며 묵묵히 자신만의 해석으로 완성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가 연기한 극 중 ‘도한’은 집요함과 열정으로 가득한 인물. 변호사 출신 강력계 형사인 도한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묵직한 존재감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사진=각 영화·드라마·쇼 스틸컷

<미끼> 속 도한에서 수염만 지우면 여전히 뽀얀 얼굴이 드러난다. 그런데 벌써 데뷔한 지 30년이 흘렀다고. 무려 ‘지난 세기’인 1993년 한 아동복 브랜드 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들인 장근석은 10살의 나이에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배우로서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첫 작품은 시트콤의 마지막 황금기라 불렸던 2000년대 초반 <논스톱4>. 그는 작품에서 자기애에 흠뻑 젖은 의대생을 연기하며 소위 ‘자뻑’ 캐릭터를 구축했다.

이후 <프라하의 연인>, <황진이> 등을 통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믿보배’로 거듭난 장근석. 그의 포텐이 폭발한 작품은 2008년 방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다. 당시만 해도 생소한 주제였던 클래식 음악계를 다룬 이 작품에서 천재 음악가 ‘강건우’ 역을 맡아 선배 김명민에 전혀 밀리지 않는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전작의 역대급 흥행으로 그에게 밀려드는 시나리오는 많았지만, 그가 택한 작품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듬해 장근석은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은커녕 무능한 사법권을 조롱하는 ‘피어슨’ 역을 맡아 상대를 봐가며 수시로 감정을 오가는 사이코패스를 섬세하게 재연해내 찬사를 받았다. 그의 열연 덕분에 작품의 모티브가 된 살인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장근석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 이것이 문화 콘텐츠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고 작품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이후 장근석이 이 영화가 가진 의미를 높이 평가해 출연료도 받지 않고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이 배우 자신에게도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겠지만, 장근석은 쉬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 까칠한 톱스타로 등장하며 본격 ‘아시아 프린스’로 거듭나게 된다. 드라마가 국내외에서 두루 사랑받은 덕에 일본과 대만 등 여러 국가에서 리메이크됐지만 “원작의 황태경(장근석)을 이길 캐릭터가 없다”는 평가로 이어지면서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연기와 노래, MC를 오가며 쉬지 않고 작품활동에 매진한 그는 2018년 드라마 <스위치-세상을 바꿔라> 이후 휴식에 들어갔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곧 돌아오리라 믿었던 팬들은 점점 길어지는 그의 공백에 조금씩 우려를 나타냈다. 쌓이는 우려에 지쳐갈 무렵 장근석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OTT 오리지널로 복귀를 선언했다. 해사한 얼굴을 수염으로 가리고 카리스마로 무장한 <미끼> 속 ‘도한’이다. 작품은 공개 전부터 OTT 화제성 조사 드라마 부문 5위에 오르는 등 흥행 질주를 시작했다.

사진=쿠팡플레이

<미끼>는 모든 촬영을 미리 마친 덕분에 이제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는 일만 남았다. 오랜만에 연기 열정을 불태운 장근석은 휴식이 간절할 만도 한데, 쉴 틈이 없다. 평소 ‘팬 사랑’이 유별나다고 알려진 그는 오랜 시간 팬들을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지우기 위해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소탈한 매력을 드러내기도 하고,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선 <SNL 코리아3>에 출연해 흑역사 재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SNL 코리아3>에서 경쟁작이라고 할 수 있는 <더 글로리> 속 혜정(차주영 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연해냈고, 흑역사로 꼽히는 ‘싸이월드 감성 샷’을 선보이며 망가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중이 바라보는 자신의 이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장근석. 어린 나이에 발 들인 연예계는 그에게 또래 친구들보다 빠른 ‘철 들기’를 강요했고, 이 때문에 그의 생각은 종종 ‘허세’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람들의 놀림과 도발에도 “아, 그랬었지!” 하며 함께 웃을 뿐이다. 장근석의 자유로운 생각과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도전이 ‘허세’라면, 그의 진중함과 솔직함, 당당함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닐까? <미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의 차기작이 벌써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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