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 ‘무빙’의 이유 있는 흥행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 로맨스→판타지 액션 스릴러, ‘무빙’엔 다 있다 스토리-연출-연기력 모든 것이 완벽한 ‘한국형 히어로물’
매력 있는 수작(秀作)이 탄생했다.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액션 시리즈다. 2015년 오늘의 우리만화 문화체육부장관상, 2015 대한민국 SF어워드 만화 부문 우수상 등의 영예를 안았을 뿐만 아니라 누적 조회수 2억 회에 빛나는 강풀 작가의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무빙>은 원작자인 강풀이 직접 극본을 집필했으며 넷플릭스 <킹덤> 시즌2의 박인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23년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자 오리지널 콘텐츠 송출 중단, 실적 부진, 디즈니코리아 OTT 콘텐츠 팀 해체 등 위기를 겪고 있는 디즈니+의 구원투수로 뜨거운 기대를 모았던 이 작품은 총제작비 650억 원이 투입됐을 뿐만 아니라 류승룡-한효주-조인성-차태현-류승범-김성균-김희원-문성근-이정하-고윤정-김도훈 등 주연만 11명인 초호화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으며 공개 전부터 국내외 예비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작품의 공개를 앞두고 이어진 디즈니+의 대규모 홍보도 예비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높였다. 디즈니+는 오픈 한 달 반 전부터 티저 예고편을 공개,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홈페이지까지 개설하며 예비 시청자들을 모았고, 여러 버전의 포스터와 ‘블랙 요원 미션 이벤트’, ‘복지 혜택’ 등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공개 방식도 변경했다. 기대작이던 오리지널 드라마 <카지노>조차도 두 시즌으로 쪼갰을 뿐만 아니라 순차 공개 방식을 고집해 온 디즈니+는 <무빙>을 향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듯 20부작 중 7화 분량의 에피소드를 먼저 공개한 후 매주 2화씩 오픈 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꿨다. 여전히 순차 공개의 고집을 꺽진 않았지만, 시청자들이 <무빙>의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이야기를 제공한 것. 이는 총 20부작의 작품 중 1~7화 만으로 시청자 마음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디즈니+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기대와 함께 우려도 존재했다. 최근 디즈니+의 여러 작품들이 흥행과 화제성에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 시즌1의 흥행에 이어 지난 7월 공개된 <형사록 시즌2>는 웰메이드 장르물로 호평을 이끌며 “연기 맛집”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늘의 OTT 통합 랭킹] 차트와 OTT-TV 통합 드라마 화제성에서 단 한 차례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등 아쉬운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무빙>마저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면, 디즈니+가 더 이상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현실’이 될 수도 있었을 상황.
하지만 디즈니+의 노력과 자신감은 헛되지 않았다. 베일을 벗은 <무빙>은 그야말로 ‘대작’이었다. 지난 9일 공개한 1~7화에서는 아픈 과거와 초능력을 숨기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와 부모에게 초능력을 물려받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극초반의 주요 무대는 아이들이 다니는 정원고등학교. 작품은 감정에 따라 몸이 떠오르는 능력이 있는 고등학생 봉석(이정하 분)과 뛰어난 재생 능력을 가진 희수(고윤정 분)의 우정과 로맨스로 <무빙>의 세계관을 열었다.
엄마 미현(한효주 분)에게 초인적인 오감 능력을, 아빠 두식(조인성 분)에게 비행 능력을 물려받았지만 아직 초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해 매일 무거운 아령을 들고 다니는 봉석은 전학생 희수를 만나 사랑과 우정이라는 풋풋한 성장통을 겪기 시작한다. 아빠 주원(류승룡 분)에게 재생 능력을 물려받은 희수는 선생님 일환(김희원 분)의 권유로 체대 입시 준비를 시작하고, 봉석과 가까워지며 어른이 될 준비를 시작한다. 두 사람 사이를 맴도는 반장 강훈(김도훈 분)은 아빠 재만(김성균 분)의 능력을 받아 엄청난 완력과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초능력을 철저히 숨기며 반듯한 모범생으로 생활한다.
초능력을 가진 세 아이들의 이야기는 몽글몽글한 하이틴 로맨스를 방불케 한다. 전학생 희수에게 반해 시도 때도 없이 몸이 떠오르는 봉석과 그런 봉석의 능력을 알게 됐지만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르고 특별할 뿐이야”라고 말하며 자신에게도 남다른 능력이 있음을 고백하는 희수, 희수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고, 친하게 지내는 희수와 봉석이 신경 쓰이는 도훈까지. 수능을 앞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아이들 뒤에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 세대와 이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 봉석의 엄마 미현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주원은 딸 희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 이들을 노리는 존재는 바로 한국인이지만 부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의 병기로 키워진 프랭크(류승범 분). 프랭크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이미 은퇴한 ‘구세대’ 초능력자들을 한 명씩 제거한다.
봉석과 희수가 타는 버스의 운전기사이자 전기 능력을 가진 계도(차태현 분)의 아버지도 프랭크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에 분노한 계도는 프랭크를 찾아가지만 처참히 패한다. 프랭크의 다음 목표는 미현. 미현과 봉석은 죽음의 위기에 놓이지만, 미국의 계획을 알아챈 국정원 제5차장 민용준(문성근 분)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진다. 국정원의 방해에 화가 난 미국은 프랭크에게 코드명 구룡포 주원을 제거할 것을 명령하지만, 주원과의 싸움에서 목이 관통당하며 패배한다.
부모 세대의 이야기는 프랭크와의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봉석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보호’라는 명목하에 자신을 제어하는 엄마 미현에게 폭발하고, 그런 봉석에게 미현은 “아빠처럼 되고 싶어서 그래?”라며 울분을 토한다. 아직 그 사연이 밝혀지지 않은 재만과 강훈의 이야기는 궁금증을 높였다. 강훈은 어딘가 어눌한 아빠 재만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아들에게 항상 밝은 미소를 짓던 재만은 갑작스러운 아들의 사과에 아픈 표정을 짓는다.
여느 히어로물처럼 하늘을 날아 인류를 구하는 영웅은 없지만, <무빙>은 완벽한 한 편의 휴먼 드라마로 대장정의 서막을 열며 ‘한국형 히어로물’의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었다. 원작자인 강풀 작가가 직접 써 내려간 극본이 빛을 발한 것. 12부, 16부로 구성됐던 최초의 기획안을 깨고 20부작의 긴 호흡을 선택한 강풀은 <무빙> 세계관의 창시자답게 촘촘한 스토리와 충분한 캐릭터 설명으로 서사를 탄탄히 쌓아 올리며 시청자들을 <무빙>의 거대한 세계관 속으로 이끌었다.
갑자기 20부작의 대장정을 걷게 돼 “연출자의 입장에서 힘들었다”고 밝힌 박인제 감독은 센스 있는 연출력으로 <무빙>의 세계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박 감독은 하이틴 로맨스였다가 갑자기 액션 스릴러로 넘어가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는 전개를 탄탄한 구성으로 격파했고, 모든 캐릭터의 서사를 충분히 전하고 싶었다는 강풀 작가의 바람에 맞춰 세심한 디테일을 살리며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살인 병기 프랭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 장면은 장르물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도 환상적인 볼거리를 제공했다.
화려한 라인업의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도 빛났다. 부모 세대를 맡은 류승룡-한효주-조인성-김성균 등은 말할 것 없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특히 지난 16일 8, 9화에서 공개된 한효주와 조인성의 로맨스 서사는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특수요원의 임무로 시작된 관계지만 서로의 인질이 돼 버린 미현과 두식의 애절한 로맨스는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공개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미현’과 ‘두식’으로 점령했다.
이정하-고윤정-김도훈은 풋풋한 고등학생 역을 사랑스럽게 표현해 이야기에 활력을 더했다. 학교 선생님과 버스 기사로 아이들의 곁에서 살아가는 김희원과 차태현도 마찬가지. 또한 미국에서 온 남자 프랭크 역을 맡은 류승범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살아온 프랭크가 가진 상처와 무자비한 살인 병기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섬세하게 풀어내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반면 총 20부작으로 제작된 만큼 “이야기가 늘어진다”는 평가도 나왔다. 봉석과 희수의 ‘썸’ 장면이 별다른 진전 없이 7화 내내 반복될 뿐만 아니라 원작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원작 또한 중 후반부 이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던 만큼, 일부 시청자들은 느린 전개에 대해 “캐릭터의 서사를 충분히 설명하기 위한 강풀 작가의 의도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작품은 원작과 유사한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탄탄한 스토리와 센스 있는 연출,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력으로 “돈값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무빙>은 지난 9일 공개 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의 OTT 통합 랭킹] 차트 최상단을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8월 2주차 OTT-TV 통합 드라마 화제성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질주를 시작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작품은 디즈니+ TV쇼 부문에서 한국을 포함한 5개국 1위(플릭스패트롤)를 달성, “<무빙>이 단 하나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박인제 감독과 강풀 작가의 능력”, “모든 사람들을 몰입하게 하는 특별하고 멋진 이야기” 등 외신들의 극찬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하지만 디즈니+의 ‘구멍가게’ 식 운영은 국내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다. 당초 지난 16일 오후 4시 공개 예정이던 8, 9화가 예정된 시간에 업데이트되지 않은 것. 사전 공지도 하지 않은 채 공개되지 않는 작품에 시청자들은 “셋탑박스 재부팅해도 안 된다”, “하루 종일 4시만 기다렸는데 이게 뭔가요”, 등의 비판을 보냈다. 사태 수습에 나선 건 디즈니+가 아닌 주연배우 류승룡이었다. 류승룡은 자신의 SNS를 통해 “뭔가 단단히 오류가 난 것 같다. 7화 플레이바에서 다음 에피소드 재생을 클릭하면 8화가 나온다”고 시청 방법을 개재, 시청자들이 알기 쉽게 직접 화면을 캡쳐해 업로드하며 설명했다.
결국 <무빙>의 8, 9화는 예정된 시간에서 3시간이 지난 오후 7시경 에피소드 목록에 업데이트됐다. 디즈니+는 “금일 8, 9회 에피소드가 지연돼 공개됐다. <무빙>을 기다려 주신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리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사과문을 개재했지만, 사태 발발 이후 그 어떤 공지 없이 성의 없는 사과문 하나만 딸랑 올린 디즈니+의 운영 방식에 시청자들은 “구멍가게식 운영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가 이런 건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도 부족할 판에 아쉽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무빙>은 디즈니+의 구원투수가 됐지만 디즈니+는 <무빙>의 리스크가 된 셈이다.
디즈니+의 훼방으로 위기 아닌 위기를 맞이한 <무빙>이지만, 탄탄한 완성도로 국내외 시청자들은 물론,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이끌고 있는 만큼 작품을 향한 뜨거운 관심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 아직 ‘순차 공개’의 숙제를 안고 있는 <무빙>이 끝까지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한국형 히어로물의 새 지평을 연 <무빙>은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디즈니+에서 2화씩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