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음주 권유부터 흡연까지, ‘규제 프리’ OTT 어디까지 갈까
‘방송법’ 규제 그림자 피해 간 OTT, 오리지널 콘텐츠서 흡연·음주 장면 남발 캐릭터성 표현 위해 ‘청소년 흡연’ 장면 사용하는 넷플릭스, 이대로 괜찮은가 OTT 규제 위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멈춰선 현재, 업계는 “규제 안 된다”
국내외 OTT 플랫폼이 흡연·음주 장면을 담은 콘텐츠를 빈번하게 송출하며 시장의 비판을 사고 있다. TV로 방영되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방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OTT 플랫폼 오리지널 드라마 등은 청소년의 흡연 장면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등 자극적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 중이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OTT 콘텐츠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는 가운데,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등 정부의 OTT 법제화 및 규제 방안은 사실상 제자리에 멈춰서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전통적 방송 규제에 OTT를 끌어들이는 것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공룡’의 배를 불리는 일이라며 OTT 시장 현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음주·흡연 등 ‘자극적 장면’ 남발하는 OTT
방송법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28조는 ‘방송은 음주, 흡연, 사행행위 사치 및 낭비 등의 내용을 다룰 때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OTT 플랫폼의 경우 방송법이 아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보호법)을 적용받는다. 이 법은 유해 사이트나 불법 정보 유통 등을 금지하고 있으나, 흡연이나 음주 장면에 대한 규제 조항은 담고 있지 않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OTT 플랫폼은 흡연, 음주 등 자극적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26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국내외 OTT 서비스 7개사의 인기 순위 상위 드라마 작품 14편을 대상으로 모니터링한 결과 87.5%(12편)에서 담배 제품과 흡연 장면이 노출됐다. OTT 오리지널 콘텐츠 중 음주를 전면에 내세우는 10개 드라마·예능 프로그램(96편)에는 음주 장면이 자그마치 249회나 묘사됐다. 1편당 음주 장면이 약 2.6회 송출된 것이다.
문제는 OTT가 가진 파급력이 지상파 못지않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정보통신망보호법은 서비스 제공자단체가 이용자 보호를 위해 행동강령을 정하고 청소년 유해 정보가 유통되지 않도록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정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정부가 OTT 콘텐츠 제작자와 플랫폼 업계 등에 자율규제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독려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에서는 ‘미성년자 흡연’까지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에도 미성년자 흡연 등 한층 자극적인 장면이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은 돈을 벌기 위해 범죄의 길을 선택한 고등학생들이 그로 인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배우 정다빈이 연기한 불량 청소년 ‘서민희’는 거침없는 욕설을 내뱉고, 수시로 전자담배를 피운다. 이뿐 아니라 해당 캐릭터가 돈을 벌기 위해 미성년자 성매매에 나서는 장면이 드라마 1화부터 적나라하게 묘사되기도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에도 흡연 청소년이 등장한다. 소위 ‘센 언니’ 캐릭터인 고등학교 3학년 박미진(이은샘 분)은 첫 등장부터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는 모습을 보이며, 담배 금단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해당 캐릭터의 지나치게 잦은 비속어 사용 역시 우려를 샀다. 해외 시청자들이 미진이 자주 하는 욕설의 한국어 발음을 본따 ‘Miss Shibal’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다.
이는 비단 국내 시리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비영리 공공의료단체이자 금연운동단체인 트루스이니셔티브가 15~24세 연령대 사이에서 인기를 끈 미국 방송사와 케이블TV, 넷플릭스의 2015~2016년 방영 드라마 14편을 분석한 결과,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 7편에 등장한 담배 노출 장면은 총 319개에 달했다. 이는 방송사와 케이블TV 채널이 제작한 나머지 7편(139건)에 비해 2.3배 많은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넷플릭스를 필두로 OTT 콘텐츠의 파급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만큼, 이처럼 적나라한 흡연·음주 장면 연출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제가 된 콘텐츠 대부분이 만 18세 이상으로 관람 연령 제한을 두고 있지만, 각종 OTT 콘텐츠의 자극적인 장면이 미성년자도 접할 수 있는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활발하게 공유되는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지부진한 OTT 법제화, 업계 “섣부른 규제는 독이다”
토종 OTT 오리지널 작품 역시 논란을 피해 가진 못했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서는 성인인 교사가 학생에게 술, 담배를 권유하거나, 학생의 담배를 빌려 흡연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처럼 인기 미디어에 등장하는 음주·흡연 장면은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미디어 속 음주·흡연 장면에 자주 노출되면 음주와 흡연을 긍정적으로 인지하고, 모방을 시도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OTT 시대’에 이 같은 위험은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해 4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세대별 OTT 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국내 OTT 이용률은 작년 기준 81.7%를 기록했다. 특히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의 이용률은 94.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OTT 플랫폼이 지상파 방송 수준, 어쩌면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을 추진 중이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은 방송법·IPTV법·전기통신사업법(OTT) 등으로 분산된 미디어 규제 체계를 통합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업계에서는 차후 방통위가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제정을 통해 OTT 등 뉴미디어에 전통적 방송 규제를 적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돼 왔다. 실제 방통위는 꾸준히 OTT가 방송과 같은 서비스라며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를 주장해 온 바 있다.
하지만 OTT 법제화는 여전히 방통위를 비롯한 규제기구의 ‘주요 정책추진과제’에 머물고 있다. 관련 논의가 지연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글로벌 공룡인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을 석권한 현재, 섣불리 규제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누적되는 적자에 발목을 잡힌 토종 OTT 플랫폼이 규제의 직격탄을 맞을 경우 토종 플랫폼 시장 자체가 침몰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다.